2022년 아나르코 생디칼리즘 최전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 연대, 두 번째 연대를 마치고
지난주에 이어 다시 거제로 향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7월 2일 영남권 노동자대회는 거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에 연대하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거제로 향하기 전에는 6월 30일 목요일, 세종호텔 목요집회에 연대한 뒤 농성장 농성 당번을 맡았고, 이어서 곧바로 7월 1일,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용산으로 향하는 도보 행진을 함께 했다. 벌써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피고 있었다.
거제에서 진행된 노동자대회에 관해서는 깊게 다루지 않고자 한다. 각지에서 많은 동지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거통고)에 연대하기 위해 발걸음을 향했고, 그만큼 많은 이들의 증언이 여러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노동자대회 뒤에 열린 거통고 동지들과의 간담회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간담회는 대우조선 서문 맞은 편에 위치한, 1층에 비촌치킨 옥포점이 있는 건물 2층 지회 사무실에서 개최되었다. 온갖 곳에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 이곳에 모여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그간 투쟁 경과, 현재 상황, 이후의 투쟁 향방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지회장 김형수 동지는 망설임 없이, 분명하게 많은 동지 앞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간 비정규직 투쟁에서는 불법 파견임을 확인하는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이 많았다. 하지만 거통고는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하지 않는다. 법이 아닌 투쟁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겠다고 말이다.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너무나 반가운 이야기를 듣고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그곳에 있던 거통고 동지들을 꽉 끌어안고 싶었다. 2007년 시행된 비정규직법 이후, 적지 않은 투쟁 현장에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병행해 왔다. 이긴 사례도, 진 사례도 있다. 하지만 법적 판단을 구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듯 길고 지난하다. 몇 년쯤은 우습게 지나가 버린다. 아울러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문제다.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뿐 아니라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등을 거쳐 부당해고 등을 인정받아도 끄떡 않고 무시하는 기업들이 비일비재하다. 단적인 예로, 중앙노동위원회, 심지어 행정법원에서 부당해고가 맞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는 판결을 무시하는 금호아시아나, 아시아나케이오에 맞서 계속해 농성을 이어 왔다. 그리고 777일이 되던 날, 복직을 관철하기 위해 서울 마곡동에 위치한 아시아나케이오 본사 점거 투쟁을 단행했다. 하지만 아시아나케이오는 7월 3일 지금까지도 대화는커녕, 오히려 본인들이 짐을 싸 대낮에 사무실을 버리고 도주했다(아래 기사 참조).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지는 경우는 굳이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영향을 예상할 수 있다. 판결 여부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마음을 먹고 시작하더라도, 패소는 투쟁 대오의 사기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분노로 더욱 가열찬 투쟁을 이어 나갈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차포 다 떼어놓고 이야기해보자. 법은, 국가는 정말 노동자의 편인가? 그 법을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그 법은 누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는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시행되었으나 처벌 대상도, 기준도 모호한 상황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열과 성을 다하고 있지만 매번 향방은 모호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세부 규정에 관해 사회적 투쟁을 이끌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사후적 투쟁, 수세에 있는 투쟁을 전개하며 진을 빼야 하는가?
아나키즘은, 그리고 노동조합이 사회 변혁의 주축을 담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즉 아나르코 생디칼리즘은 이것을 넘어서자고 이야기한다. 법적 투쟁, 물론 필요한 국면이 있고 유효한 국면이 있다. 실질적 전략으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매몰되어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 이래 계속해 수세의 전선을 형성하던 지형을, 이제는 바꿀 때다. 거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동지들이 목숨을 건 도크 점거 투쟁으로 공세의 전선을 만들어냈다. 이에 호소한 각지의 동지들이 그 전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자본이 정해놓은 선을 넘는, 법과 국가가 쳐놓은 그물을 넘는 투쟁이 여기 있다. 이 전선을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결코 외면하지도, 연대의 끈을 놓지도 않을 것이다. 아나키즘이 긍정하는 세상을 투쟁하는 노동자들 가운데서 이끌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나키즘이라고 부를 수 없다. 아나키즘은 모든 노동 대중이 이미 자본과 국가라는 억압에 맞서 지금 당장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긍정한다. 그리고 지금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은 그야말로 그 가능성을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각자의 위치에서 또 다른 투쟁의 현장에 있느라 바쁠 수 있다. 그 자리들 모두 하나하나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고 소중하다. 당연하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라면, 노동조합이 자본과 국가를 부수고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믿는 이들이라면, 부디 이 투쟁에 함께 할 수 있기를 호소한다. 여기 2022년의 가장 첨예한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최전선이 있다. 이 전선을 포기하고 여러 말로 변명하지 말자. 말이 많아지는 것은 그것을 하지 않기 위한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찾는 대신, 거제로 가자. 간담회에서 김형수 지회장은 지금의 투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동지들의 직접적 연대”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했다. 그 손을 잡자.
돌아오는 금요일, 7월 8일, 민주노총 주관으로 거제에서 결의대회가 진행된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지난주, 이번 주에 이어 또다시 거제로 향한다. 함께 하고자 하는 모든 동지와 같이 향하고자 한다. 더욱 많은 연대로, 더욱 많은 조직으로 나아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동지들의 투쟁을 누구도 감히 의심할 수 없는 승리로 만들자.
2022년 7월 3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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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사 : “‘해고문제 해결하라’ 연좌농성 하니···아시아나 케이오, 포장이사 불러 짐싸들고 '줄행랑'”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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